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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설교/ 성탄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막 1:1-8

주쫑 2018. 12.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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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2월의 첫 주일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절기상으로는 대강절 혹은 대림절로 불리는 날입니다. 대강절은 성탄 4주 전부터 성탄절까지 이어지는 절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고 기다리는 기간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대강절을 통해 성탄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며 이 날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성탄의 주인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은 성탄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그저 장삿속이나 향락거리로 삼고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분위기를 따르지 아니하고 진정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실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 모두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마음속에 잘 모실 준비를 할 수 있을지를 함께 상고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복음서를 보시면 유독 마가복음에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1장에서는 예수님의 족보와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일어준 것과 또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 잉태를 알려준 사건과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탄생한 사건과 목자들이 찾아와서 경배한 사건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에는 직접적인 탄생에 대한 기록보다는 이것을 신학적으로 사도요한은 설명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는 말씀으로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을 증거합니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성육신’ 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가복음에서는 이것이 생략 되었는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대해 보다 집중해서 기록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나아가 삶 속에 모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 이천년이 지났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성탄절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등장한 세례 요한의 이야기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마가복음에 성탄에 대한 기록이 없어도 그를 통해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해야할지 준비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강절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본래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 태어난 사람으로 이들 부부는 오랜 시간 아이를 갖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 하였으며 일찍이 집을 떠나 광야에서 기도하며 경건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 눅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마치 과거에 왕이 행차할 때에 그 앞에서 신하들이 왕이 지나가기에 머리를 숙여 예를 갖출 것을 선포하듯이 바로 세례 요한의 사명이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 마가는 증거합니다.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 이름의 뜻에 대해서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그 사실을 몰랐던 요셉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고 그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알려주는데 그 이름이 예수라 하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즉 구원자’ 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는 원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으로 메시야와 같은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왕과 선지자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이들로 이들을 세울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붓는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역할들을 감당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말입니다.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저주와 멸망에서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은 갑자기 행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일로 2-3절 ‘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라고 하신 말씀처럼 세례 요한이 외치는 소리처럼 사명을 감당하는데, 그 내용이 바로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구세주가 행차하시니까 길을 잘 닦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과거 왕이 행차하면 미리 길을 잘 닦아 놓아야 합니다. 요즘처럼 도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왕의 행차 할 때에는 반드시 길을 잘 닦아 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오시는데 미리 길을 준비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미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왕의 행차 시 길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기 위해 마음의 길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기도하며 지내다가 예수님의 공생에 직전에 등장하였는데 맨 처음 한 일이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4-5절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그런데 요한의 세례와 오늘날 세례와는 그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세례는 성부 성자 성자의 이름으로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면 세례 요한의 세례는 ‘회개한 것을 확인해 주는 표시’ 였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의 세례는 백성들을 회개하는 마음을 준비시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 입니다. 회개란 하나님을 등지고 범죄하고 타락해서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던 사람이 이제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길을 하나님께로 향해 닦아 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그 마음의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해 ‘길을 닦는 것’ 으로 묘사합니다.
눅3:3-6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즉 세례 요한은 길을 준비하는데 골짜기는 메우고, 산이나 언덕 같이 높은 것은 깎아 내리고, 굽은 것을 곧게 하고, 험한 것은 평탄하게 만들라고 말합니다.
즉 구세주가 오시기 좋게 길을 닦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마음의 길입니다.
다시말해 회개하고 예수님이 임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참으로 기다리는 자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정결한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마음에는 오시지 않으십니다. 정결한 마음에 오십니다.
팔복 중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하셨듯이 마음이 정결해야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마음이 추하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통회 자복하는 심령입니다.
다윗은 역시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에 범죄 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통회 자복함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여김을 받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늘 함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탄을 앞두고 우리 마음을 정결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만삭이 되어서 요셉과 함께 호적 하러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빈방이 없어서 결국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빈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방이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방 하나 자리하나 비우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예비로 남겨둔 방이 있을 수도 있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방 하나를 비울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에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관 주인의 탐욕과 불편을 감수하기 싫어하는 손님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정작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심에도 예수님을 모실만한 빈방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 마음속에 이와 같이 여유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마음을 비워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오실 수 있는 마음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러한 마음을 품고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둘째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에 임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낮아질 때에 예수님이 기쁨으로 임하십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예루살렘의 왕궁이나 귀족이 사는 저택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천사들이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준 이들도 비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임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 어떻게 겸손할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는 말씀처럼 다른 이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바로 겸손의 시작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아무리 나보다 신앙의 연조가 짧고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분명 나보다 더 낫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사람 앞에 겸손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다 내 힘으로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과 사람 들 앞에 늘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성탄절을 앞두고 더욱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셋째로 정직한 마음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를 촉구하였을 때에 그 가운데 일부는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어떻게 해야 구세주를 영접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한 말이 눅3:12-14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당시 세리된 자들에게 세리의 자리에서 모든 거짓과 불의를 회개하고 정직한 마음을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도 시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고 하였듯이 정직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마음에 예수님께서도 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직한 편에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이 주님을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다른 이들에게 준비하라고 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이 구세주를 영접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삶으로 실천했습니다.
6-8절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 요한은 제사장 가문 귀족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얼마든지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야로 나가서 살았습니다. 낙타털 옷에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탐욕을 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뒤에 오실 예수님이야말로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은 청결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과 불의가 없는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준비하고 맞이하였던 것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매년 그저 형식적으로 맞이하는 그런 성탄 아니라 매년 우리는 새로움으로 맞이하는 성탄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례 요한이 품었던 마음과 같이 저와 여러분들도 이러한 마음을 품고 주님의 복된 성탄을 준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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